파나마운하 대륙을 가르는 초 거대 운하의 역사

2023. 7. 11. 01:28정보

반응형
SMALL

파나마운하 대륙을 가르는 초 거대 운하의 역사

<출처> 지식해적단 YouTube

인류가 꼭 뚫고 싶어 했던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구대륙의 수에즈 지협과

신대륙의 파나마 지협이었죠.

두 지협의 공통점은 바로

'대양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수에즈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가로막고 있었고

파나마 지협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막고 있었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바스코 다 가마가

희망봉 루트를 개척한 이후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를 열어버리게 됩니다.

당연하게도 두 나라는

세계 곳곳의 바다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이에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하게 되는데...

마음대로 선을 정한 뒤

서쪽은 에스파냐

동쪽은 포르투갈

이렇게 나눠버리죠.

근데 또 이 룰을 잘 지켜서

아메리카는 에스파냐가,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포르투갈이 진출하여

서로의 충돌을 피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프리카와 그 너머의 아시아에서는

향료를 비롯해 온갖 귀중한

무역품들이 쏟아져 나온 반면

신대륙에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어요.

새로 발견한 거라곤

담배, 매독 이런 것들이었고

또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구대륙의 질병에 대한 면역이 없었기에

전염병에 매우 취약해서

노예로도 쓸 수 없었습니다.

포르투갈의 아시아

향료 무역이 너무 부러웠던 에스파냐는

아메리카 대륙을 넘어서 더 더 더 가다 보면

포르투갈과 마찬가지로

아시아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카를 5세의 명으로

마젤란이 이끄는 함대가

세계 일주를 목표로 한 항해를 시작합니다.

그들은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의 위도에서

아메리카 대륙이 끝난다 생각했는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존재할 거라고 예측한

아메리카 대륙의 끝은

예상보다 훨씬 남쪽에 있었습니다.

유빙이 떠다니는 남극권이었고

폭풍이 시도 때도 없이 부는

위대한 항로 수준의 위험한 바다였던 것이죠.

그러나 마젤란과 탐험대는

배 두척을 잃으면서까지

이 지옥의 해협을 근성으로 통과했고

태평양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태평양은 대서양보다 훨씬 넓은

지구 최대의 바다였고

처음 가 보는 바다에서

중간 기착지도 없이 맨땅에 헤딩으로

그냥 횡단해버렸습니다.

그렇게 필리핀에 도착한 마젤란 일행.

서쪽으로만 가서 끝내 아시아에 도착했죠.

그러나 기쁨도 잠시

현지 주민들과의 충돌로 전투가 일어나

지휘관이었던 마젤란을 비롯해

많은 선원들을 잃고 배도 잃은 채

남은 배 한 척으로

서쪽의 포르투갈 영역을 통과하여

3년 만에 겨우

에스파냐로 귀환할 수 있었죠.

세계 최초의 세계 일주이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몸으로 증명한 일이었고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다만 이를 통해 느낀

에스파냐의 결론은

"이건 미친 짓이다."

에스파냐는 필리핀 마닐라에 와드를 박고

태평양 연안에 아카풀코라는

항구도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아카풀코와 대서양 연안의

베라크루스를 육로로 연결하여

중국과 무역을 할 수 있게 됐죠.

그리고 이때부터 파나마 지협에

운하에 대한 필요성이 역설되었습니다.

이 지협의 땅 82km만 뚫으면

남극해의 지옥의 바다도

아카풀코와 베라크루스 사이의

정글지대도 지날 필요가 없었거든요.

그러나 이 시대의 기술로

파나마 지협에 운하를 뚫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파나마 지협은 환태평양 조산대의 일부로

말 그대로 바다에 잠긴 산맥이며

이곳에 운하를 뚫는다는 건 곧

산을 뚫는다는 이야기였거든요.

그렇게 꿈과 같은 이야기였던

파나마 운하는

에스파냐의 아메리카 식민지들이

하나 둘 독립하고 있던 19세기에

서서히 현실성 있는 얘기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1869년 프랑스가

수에즈 운하를 개통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었죠.

이집트에서 허가를 받아

수에즈 운하를 개통시켰던 프랑스의

페르디낭 드 레셉스는

1880년 그 경험을 살려

파나마 운하 건설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수에즈가 그냥 커피였다면

파나마는 그야말로 T.O.P였습니다.

아까 말했듯이

여기는 산이었고

정글이었습니다.

인류의 주적 모기들의 활약으로

노동자들은 말라리아와 황열병에 걸려

픽픽 죽어나갔습니다.

결국 레셉스와 프랑스는

9년간 2만 명 정도 죽어나간 끝에

폭망하고 물러났으며

책임자였던 레셉스는

빚더미에 앉아 참담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훨씬 긴 수에즈 운하를 완성했던

프랑스조차 포기했단 사실에

한동안은 파나마 운하에 도전하는 자는

없을 것 같았습니다.

미국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죠.

미국은 애초에

북아메리카 동부 해안의 영국 식민지들로부터

시작된 나라였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어디까지나 동부 해안과

대서양 쪽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에게서 루이지애나 식민지를 구입.

멕시코와 전쟁해서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를 뜯고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알래스카까지 구입하면서

북미 대륙에서

미국을 막을 장애물들은 모두 사라졌고

서부에서 광대한 규모의 금광이 발견되면서

서부의 개척이 가속화돼

19세기 말쯤 되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표적인 서부 대도시들이 자리를 잡게 되죠.

단기간에 성장에 성공하고

태평양에 진출한 미국은 하와이에 와드를 박고

이미 이빨 빠진 호랑이인 에스파냐를 패서

괌과 필리핀을 통째로 삥 뜯어버리는 등

태평양 일대의 일찐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그렇게 파나마에 도저히

운하를 뚫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운명에 봉착한 것이었죠.

서부 개척이 완료된 미국은

양 대양에 접한 해양 대국으로서

이제는 태평양이든 대서양이든

언제나 해군력을 투입할 수 있어야 했는데

그러려면 마젤란처럼 적도를 넘어

남극해의 죽음의 바다를 돌아가야 됐던 것입니다.

이건 무역이랑은 또 다른 문제였습니다.

군함을 육로로 수송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리하여 1902년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4,000만 달러를 주고

프랑스로부터 파나마 사업권을 매입했습니다.

그리고 파나마 땅의 주인이던 콜롬비아에게

억지 조약을 강요했는데요.

운하 통로를 중심으로 폭 10마일

그러니까 약 16km 양옆의 땅을

미국이 99년간 임대하는 조건으로

일시불 1000만 달러

운하 완공 이후 1년에 25만 달러씩

임대료를 지불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콜롬비아 의회에서 거절했지만

이미 북아메리카를 평정하고

최강국의 본색을 드러내고 있던 미국에

콜롬비아는 그냥 밥일 뿐이었습니다.

미국은 콜롬비아 내의

파나마 분리주의자들을 이용하여

식민지인 듯 식민지 아닌

식민지 같은 독립국을 만들어버릴 생각을 하죠.

1903년 11월 2일

미국의 지원을 받은

파나마 독립 세력이

봉기를 일으켰고

바로 다음 날인 11월 3일

파나마 공화국의 독립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미 해군은 파나마 앞바다에서

대놓고 대기를 하고 있었죠.

콜롬비아군은 독립을 막으러 왔다가

자기네 땅에 상륙도 못해보고 도망칩니다.

3일 뒤인 11월 6일 미국은

신생 파나마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습니다.

겨우 5일 만에 나라를 하나

만들어 버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이 세운 파나마 정부와

엎드려 절받기로 협상해

운하 주변 16km 땅을

무기한 임대하기로 조약을 맺었고

다로 다음 해인 1904년 공사를 시작했죠.

이건 그냥 산맥이었고 태평양 연안의

화강암 지반을

도저히 뚫을 수가 없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 뚫어간다 싶으면

인근의 차그레스 강이 범람해서

다 잠겨버리길 무한 반복했습니다.

2가지를 실행하게 되는데

첫 번째 일단 모기부터 박멸하자.

두 번째 산맥을 평지로 만들 게 아니라

차라리 그냥 배를 산으로 올려버리자.

미국은 그렇게 방역작업과 함께

공사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차그레스 강에 둑을 쌓아 호수로 만들어버리고

양쪽 방향에 3단 갑문을 설치해버리게 되죠.

6년 동안 다시 공사를 한끝에

미국은 10년간 6,000명이 죽는 것으로

공사를 성공시키게 됩니다.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감축된 거리.

전 세계의 무역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끼쳐서

개통 이후

100년이 넘도록 딱 두 차례를 제외하면

운행이 중단된 적도 없을 정도이죠.

미 해군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면서

1,2차 세계대전의 양상에도

아주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미국이 뚫었고 미국이 소유했으며

주변 땅은 미국 영토였기 때문에

운하에서 나오는 수입도

미국이 다 가져가며

꿀을 빨았는데요.

파나마에서 서서히 미국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폭동이 생기게 됐죠.

폭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28명의 시위대가 사망하게 됩니다.

미국이 아무리 세다고 해도

국제 사회의 비난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냉전 상황에도 불구하고

자유진영 국가들까지

이건 좀 선 넘은 거 아니냐며 비판을 가했고

결국 1979년에 미국은

운하 자체를 제외한 대부분 지역을

파나마에 반환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내정간섭을 저지르고

파나마의 정권을 교체하는 등

미국이 파나마에 행사하는 억압이 강해지자

유엔에서도 공식적인 결의안을 채택해

미국을 비난하는 등 점점 더 눈치가 보인 미국

결국 1999년 공식적으로 파나마 운하를

파나마에 반환하면서

운하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지배는

끝이 나게 됐습니다.

파나마 운하를 보유한 파나마는

현재에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무역의 거점 중 하나입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들어서 있어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상당히 잘 사는 편에 속하죠.

상선에 붙는 세금이 굉장히 싸기 때문에

파나마 국적으로 등록해

놓는 선박이 8,000척이 넘으며

한국 상선들도 파나마에

등록해 놓는 경우가 아주 많다고 합니다.

파나마가 파나마 운하로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은 한화로 2조 원에 육박하며

2016년에는 100년 만에

확장 개통을 하기도 했습니다.

파나마는 1994년 공식적으로

자국의 군대를 없애버렸는데요.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누구든지 간에

파나마를 건드리는 순간

미국에 죽도록 처맞을 게

분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볼 수 있죠.

그야말로 운하에 의한

운하를 위한 운하의 나라가 바로

'파나마'라고 할 수 있겠네요.

<출처> 지식해적단 YouTube

반응형
LIST